목차
1. 서론: "웹3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왜 간단한 답을 허락하지 않는가
이 장은 이 책 전체가 풀고자 하는 중심 문제를 제시한다. "웹3란 무엇인가?" — 겨우 한 줄짜리 질문이니 깔끔한 답이 있어야 마땅하지만, 이 질문은 좀처럼 그런 답을 내주지 않는다. 이 장의 목표는 답을 내놓기에 앞서 질문이 '왜' 어려운지를 먼저 설명하고, 이 책이 내놓을 신중하게 단서를 단 답을 미리 보여 주며, 나머지 장들이 밟아 갈 경로를 그려 두는 것이다. 이 장을 다 읽은 독자는 웹3(Web3)가 도대체 어떤 종류의 것이라고 주장되고 있는지, 왜 똑똑한 사람들이 이토록 격렬하게 엇갈리는지, 그리고 암호화폐(cryptocurrency)를 살 생각도 디지털 지갑(digital wallet)을 내려받을 생각도 없는 사람에게조차 이 논쟁이 왜 중요한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1.1 겉보기에는 단순한 질문
웹3를 잘 안다는 사람 열 명에게 웹3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라. 아마 열 가지 답이 돌아올 것이고, 그중 몇은 서로 정면으로 충돌하며, 한둘은 정치나 종교 이야기에서나 볼 법한 열기를 띠고 있을 것이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블록체인(blockchain) 위에서 돌아가는 애플리케이션의 집합이라고 답할 것이다 — 블록체인이 무엇인지는 11장에서 정식으로 정의하기로 하고, 지금은 서로 모르는 수천 명의 컴퓨터가 똑같은 기록장을 저마다 한 부씩 동시에 적어 가기 때문에 어느 한 사람도 몰래 고칠 수 없는 '공유 장부' 정도로 생각해 두자. 벤처캐피털리스트라면 인터넷의 세 번째 대전환기, 곧 평범한 이용자가 마침내 자신이 쓰는 온라인 서비스의 일부를 '소유'하게 되는 순간이라고 답할 것이다. 프라이버시 운동가는 신뢰할 중개자가 필요 없는 인터넷이라는 수십 년 묵은 꿈이 드디어 실현되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금융 사기를 취재해 온 기자는 똑같은 확신을 담아, 카지노에 둘러 놓은 마케팅 포장지라고 답할 것이다. 그리고 회의적인 컴퓨터과학자는 한마디로, 대부분 헛소리라고 잘라 말할 것이다.
이들은 무지해서 이렇게 답하는 것이 아니다. 저마다 진짜 전문성과 진짜 경험에서 우러난 답을 내놓고 있다. 문제는 진실이 어딘가에 숨어 있고 그중 한 사람만 그것을 찾아냈다는 데 있지 않다. 문제는 '웹3'라는 단어가 화자마다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 단어는 때로는 일군의 기술을, 때로는 미래상을, 때로는 정치철학을, 때로는 자산군을, 때로는 판촉 문구를 가리킨다. 그러니 "웹3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물의 끓는점은 몇 도인가?"처럼 확정된, 검증 가능한 답이 있는 질문보다는 "재즈란 무엇인가?"나 "자유주의란 무엇인가?" 같은 질문에 가깝게 움직인다. 이런 질문 앞에서 정직한 첫걸음은, 이 용어가 '경합 중'이라는 사실, 합리적인 사람들이 이 말을 서로 다르게 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어떤 답이든 그 불일치를 없는 셈 치는 대신 불일치의 지도를 그리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쉽게 말해: 웹3가 무엇인지 말하기 어려운 까닭은 기술이 복잡해서라기보다(물론 복잡하다), 이 단어 자체가 사람마다 — 그것도 흔히 동시에 — 여러 가지 다른 뜻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질문이 왜 미끄러운지부터 이해해야 한다.
이 책은 이 미끄러움을 진지하게 다룬다. '정의를 둘러싼 다툼'을 치워 버려야 할 성가신 잡음이 아니라, 이 주제에 관해 가장 많은 것을 드러내는 사실 가운데 하나로 취급한다. 한 공동체가 스스로를 무엇이라 부를지를 두고 어떻게 싸우는지, 자기 깃발 아래 무엇을 넣고 무엇을 뺄지를 두고 어떻게 다투는지는, 그 공동체가 실제로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 준다.
1.2 같은 단어, 다섯 부류의 화자
이 용어가 왜 간단한 답을 허락하지 않는지 보려면, 이 말을 쓰는 공동체들을 하나씩 떼어 놓고 살피는 편이 좋다. 각자 이해관계가 다르고, 그래서 정의도 다르기 때문이다.
엔지니어와 발명가들은 '웹3'를 가장 좁고 정확한 뜻으로 쓴다. 이 단어를 이 기술적 의미로 처음 만든 사람은 이더리움 플랫폼의 공동 창립자 개빈 우드(Gavin Wood)다. 그는 2014년 4월 "ÐApps: What Web 3.0 Looks Like"라는 블로그 글에서 이 말을 처음 썼다(Wood, 2014). 에드워드 스노든이 국가의 대규모 감시를 폭로한 직후에 쓰인 이 글에서 우드는 "우리의 정보를 조직 일반에 맡기는 것은 근본부터 망가진 모델"이라고 주장하고, 그 대안으로 "제로 트러스트 상호작용 시스템"(zero-trust interaction system) — 어느 기업이나 정부에 대한 신뢰가 아니라 수학과 소프트웨어가 규칙을 집행하는 온라인 운영 방식 — 을 제안했다(Wood, 2014). 우드에게 웹3는 네 가지 부품의 이름까지 붙은 구체적인 공학 제안이었다. 누구도 슬그머니 내릴 수 없는 콘텐츠 게시 방법, 가명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방법, "합의 엔진"(consensus engine, 앞서 말한 공유 장부 기술), 그리고 이 셋을 묶어 주는 브라우저가 그것이다. 이것이 이 단어의 원래 정의이자 이 책의 논증 전체가 기대는 정의이며, 이 책은 여기로 거듭 되돌아온다.
기업가와 투자자들은 하나의 슬로건을 축으로 삼은, 더 넓고 더 낙관적인 정의를 쓴다. 벤처캐피털리스트 크리스 딕슨(Chris Dixon)은 Read Write Own 읽고, 쓰고, 소유하다에서 인터넷의 역사 전체를 세 시대로 묶는다. 초기 네트워크가 정보에 '접근'하게 해 준 "읽기"의 시대, 기업 플랫폼이 누구나 '게시'하게 해 준 "읽기–쓰기"의 시대, 그리고 다가오는 "읽기–쓰기–소유"의 시대, 곧 "때로 web3라 불리는,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기업만이 아니라 이용자 공동체에 권력과 경제적 이익을 나눠 주고 있는" 시대다(Dixon, 2024). 한 가지 짚어 둘 점이 있다. 딕슨은 투자사 앤드리슨 호로위츠의 제너럴 파트너로서, 자신이 설명하는 기술이 성공하면 직접적인 금전적 이득을 보는 위치에 있다. 이 책은 이 사실을 그의 논증을 기각하는 구실로 쓰지 않고 공정하게 저울에 올릴 것이다. 이 틀에서 웹3의 핵심 약속은 '소유'다. 주주가 회사의 지분을 갖듯, 이용자가 자신이 살아가는 디지털 공간의 진짜 지분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쉽게 말해: 이 발상 전체를 한 줄로 요약하는 유력한 방식은 인터넷에 관한 세 단어짜리 이야기다. 처음에 우리는 온라인의 것을 '읽을' 수만 있었고, 다음에는 직접 '쓰고' 올릴 수 있게 되었으며, 이제는 — 주장에 따르면 — 그 일부를 '소유한다'(read, write, own)는 것이다. 그 세 번째 단계가 실제인지 광고에 불과한지가 바로 논쟁의 핵심이다.
프라이버시 옹호자와 이념가들은 '웹3'를 더 오래된 정치적 기획의 최신 장(章)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쓴다. 그 뿌리는 사이퍼펑크(cypherpunk) 운동이다. 1992년 에릭 휴스, 티머시 C. 메이, 존 길모어가 시작한 이 운동은, 강한 암호학 — 비밀 코드의 수학 — 만 있으면 개인이 국가나 기업의 허락 없이도 프라이버시를 지키고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다고 믿었다(Hughes, 1993). 이 계보에 선 사람들에게 웹3는 상품이라기보다, 휴스의 표현대로 "암호학으로"(with cryptography)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익명 시스템"(anonymous systems)을 만들려는 수십 년 싸움의 연장이다(Hughes, 1993). 이 책이 26장 전체를 이 이념적 갈래에 할애하는 이유는, 이것 없이는 웹3가 왜 그토록 뜨거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케터들은 '웹3'를 브랜드로 쓴다. 2021년 무렵부터 이 단어는 엔지니어링 블로그를 떠나 광고 캠페인, 콘퍼런스 현수막, 기업 보도자료로 옮겨 갔고, 우드가 말한 네 가지 부품과는 별 상관 없는 상품에 붙는 일도 흔해졌다. 비판자들은 이것이야말로 가장 파급력 큰 용법이라고 본다. 예컨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스티븐 딜은 웹3를 "암호자산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인식을, 기성 거대 기술기업의 패권을 무너뜨린다는 거짓 서사로 바꿔치기하려는 공허한 마케팅 캠페인"이라고 규정했다(Diehl, 2021). 이 판결을 받아들이든 아니든, 이 단어가 공적 공간에서 살아온 삶의 상당 부분이 물건을 팔기 위한 딱지였다는 사실만은 부정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비판자들은 '웹3'를 과장, 재중앙화, 그리고 노골적인 사기가 반복되는 패턴의 이름으로 쓴다. 메신저 시그널(Signal)의 창립자 목시 말린스파이크는 이 기술 위에 직접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본 뒤, 탈중앙화라는 수사에도 불구하고 생태계가 소수의 중앙 기업 주위로 조용히 다시 뭉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사람들은 자기 서버를 직접 운영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Marlinspike, 2022).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몰리 화이트는 이 세계의 해킹, 사기, 붕괴 사례를 기록하는, 널리 읽히는 목록 Web3 Is Going Just Great [웹3는 아주 잘 되어 가는 중]를 운영한다(White, n.d.). 이 관찰자들에게 웹3의 정직한 정의란 포부만이 아니라 실패까지 포함하는 것이어야 한다.
아래 표는 같은 단어가 이 다섯 공동체 사이에서 어떻게 갈라지는지를 요약한 것이다.
| 화자 | 이들에게 "웹3"가 일차적으로 뜻하는 것 | 이들의 이해관계 |
|---|---|---|
| 엔지니어·발명가 | 신뢰를 최소화한 애플리케이션을 위한 특정한 기술 아키텍처 | 작동하는 시스템의 구축 |
| 기업가·투자자 | 인터넷의 "소유" 시대, 곧 기회 | 투자 수익 |
| 프라이버시 옹호자·이념가 | 사이퍼펑크 기획의 최신 단계 | 국가와 기업으로부터의 자율 |
| 마케터 | 미래를 약속하는 브랜드 | 상품 판매 |
| 비판자 | 과장·재중앙화·사기의 반복 패턴 | 대중을 피해로부터 보호 |
이 가운데 어느 하나만이 '올바른' 뜻인 것은 아니다. 다섯 모두 실재하는 무언가를 붙잡고 있다. 신중한 검토가 할 일은 이 다섯을 한꺼번에 시야에 담아 두는 것이다.
1.3 '정의를 둘러싼 경합'이란 무엇이며, 왜 드문 일이 아닌가
방금 그린 상황에는 언어와 정치를 연구하는 분야에서 붙인 이름이 있다. 정의 경합(definitional contestation)이다. 경합적 용어란 그 의미 자체를 두고 원칙에 입각한 이견이 계속되는 말이다. 그 말을 정의하는 행위가 이미 가치가 걸린 문제에 대해 한쪽 편을 드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어떤 단어들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서가 아니라, '그 단어를 정의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주장'이기 때문에 경합한다. "민주주의"나 "예술"이나 "자유"가 무엇인지 말하는 것은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일이다. "웹3"는 그런 단어가 되었다.
이 점을 곱씹을 가치가 있는 것은, 흔한 오해 하나가 여기서 풀리기 때문이다. 이 주제에 처음 발을 들인 사람은 웹3를 둘러싼 혼란이 일시적인 안개여서, 제대로 된 전문가가 한두 문장이면 걷어 낼 수 있으리라 짐작하기 쉽다. 그렇지 않다. 이 혼란은 구조적이다. 이 단어가 "여기 이런 방식으로 작동하는 기술들이 있다"는 '기술(記述)적' 주장과, "그리고 인터넷은 이렇게 조직되어야 '마땅하다'"는 '규범적' 주장을 한 몸에 묶어 놓았기 때문이다. 기술(記述)과 가치판단이 한 단어 안에서 함께 움직이는 한, 그 단어를 정의하는 일은 곧 그 가치판단을 밀어붙이는 수단이 된다. 열광자의 정의("웹3는 소유권을 이용자에게 돌려준다")와 비판자의 정의("웹3는 탈중앙화라는 옷을 입은 투기 카지노다")는 같은 사실에 대한 두 개의 보고서가 아니다. 정의의 탈을 쓴 두 개의 경쟁하는 논증이다.
여기서 철학자들이 말하는 '본질적으로 경합하는 개념'(essentially contested concept)이 유용한 비교가 된다. 내부 구조가 복잡하고 가치 기준을 내장하고 있어서, 그 개념을 어디에 적용해야 옳은지가 영구히 다투어지는 개념 — 서로 다른 사용자들이 저마다 자기 뜻이 진짜라고 믿으면서 실제로는 다른 것을 의미하는 개념 말이다. 웹3가 바로 그런 성격을 지닌다. 내부가 복잡하고(암호학, 경제학, 소프트웨어, 정치를 한데 묶는다), 평가어이며(무언가를 "웹3"라고 부르는 것은 대개 중립적 명명이 아니라 칭찬 아니면 비난이다), 경계가 공공연히 다투어진다(공개 참여가 없는 기업용 '블록체인'도 웹3인가? 중앙화된 암호화폐 거래소는?). 이 점을 인정한다고 해서 질문이 답할 수 없는 것이 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가 기대해야 할 답의 '종류'가 달라진다. 한 줄짜리 정의가 아니라 영토와 경계와 분쟁의 지도 — 바로 이 책이 제공하려는 것이다.
1.4 또 하나의 함정: 세 가지 다른 구상, 하나의 헷갈리는 숫자
어려움의 일부는 순전히 작명의 우연에서 온다. '웹3'라는 용어는, 브랜드만 공유할 뿐 뜻은 전혀 다른 두 개의 다른 "차세대 인터넷" 구상과 끊임없이 혼동된다. 이 셋을 풀어 헤치는 일은 이 책이 의도한 기여 가운데 하나이지만(27장에서 본격적으로 다룬다), 그 구별은 처음부터 중요하다.
첫째는 시맨틱 웹(Semantic Web)이다. 때로 "웹 3.0"이라고도 불리는 이 구상은 다름 아닌 웹의 발명자 팀 버너스리가 제임스 헨들러, 오라 라실라와 함께 2001년 Scientific American 기고문에서 제안한 것이다. 이들의 비전은 기존 웹의 확장으로서, "정보에 잘 정의된 의미를 부여하여 컴퓨터와 사람이 더 잘 협력해 일할 수 있게 하는" 웹이었다(Berners-Lee, Hendler, & Lassila, 2001). 이것은 근본적으로 데이터를 '기계가 읽을 수 있게' 만드는 기획으로, 암호화폐보다는 인공지능에 가깝다. 블록체인과는 사실상 아무 관련이 없다.
둘째는 메타버스(metaverse)다. 소설가 닐 스티븐슨이 1992년 SF 소설 Snow Crash [스노 크래시]에서, 아바타를 통해 들어가는 몰입형 3차원 가상 세계를 가리키려고 만든 말이다(Stephenson, 1992). 이 개념은 2021년 10월 페이스북이 그런 가상 환경에 전략적으로 베팅하겠다는 신호로 사명을 메타(Meta)로 바꾸면서 다시 대중의 의식 위로 떠올랐다(Meta, 2021). 메타버스의 핵심은 '몰입형 가상 공간'이다. 홍보하는 쪽에서 이따금 한데 용접하려 들지만, 개념적으로는 시맨틱 웹과도 블록체인 웹3와도 별개다.
쉽게 말해: "차세대 인터넷"에 관한 전혀 다른 세 가지 비전이 뒤죽박죽이 된 것은, 그중 둘이 "3.0"이라는 숫자를 달고 있고 셋 모두 미래라는 이름으로 마케팅되기 때문이다. 하나는 컴퓨터가 데이터의 의미를 이해하게 하자는 것(시맨틱 웹)이고, 하나는 몰입형 가상 세계(메타버스)이며, 오직 세 번째 — 암호학과 자기주권(self-sovereignty)에 초점을 둔 기획 — 만이 이 책이 말하는 '웹3'다. 이 셋을 갈라 두는 것만으로 싸움의 절반은 이긴 셈이다.
블록체인 진영이 소수점 없는 축약형 '웹3(Web3)'라는 표기에 대체로 정착하고, "웹 3.0(Web 3.0)"을 버너스리의 더 오래된 시맨틱 웹에 남겨 둔 것은 바로 이 구별을 표시하기 위해서다(Wikipedia, Web3, n.d.). 이 책도 처음부터 끝까지 그 관례를 따른다. '웹3'는 블록체인 기반 기획을, '웹 3.0'은 시맨틱 웹을 뜻한다.
1.5 이 책의 논지
한 줄짜리 정의로는 안 된다고 고집해 놓았으니, 그래도 이 책은 자신의 숙고된 입장을 분명하게 밝힐 의무가 있다. 그것은 이렇다.
웹3는 단일한 기술도, 완성된 제품도 아니다. 그것은 경합 중인 사회기술적 프로젝트, 곧 '웹을 암호학 위에 다시 짓는 작업'으로 이해할 때 가장 정확하다. 이 프로젝트는 응용 암호학(디지털 서명, 암호학적 해싱, 영지식 증명, 안전한 연산)과 탈중앙화된 인프라 위에 세워지는데, 블록체인은 그중 가장 흔한 조정 계층일 뿐 유일한 계층은 아니다. 이 프로젝트를 움직이는 목표는 '자기주권'(self-sovereignty)이다. 개인이 자신의 신원, 데이터, 가치를 스스로 통제하되, 그 규칙이 '그저 믿는 것이 아니라 검증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이상이다. 가장 야심 찬 형태에서 이 프로젝트는 개인만이 아니라 '조직 전체'가, 믿고 받아들여야 하는 기관이 아니라 신뢰를 최소화한 자율 프로토콜로서 온라인에 존재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이 용어를 만든 개빈 우드를 따라, 그 표어는 "더 적은 신뢰, 더 많은 진실"(less trust, more truth)이다.
이 문장의 부분 하나하나가 신중하게 고른 것이며, 이 책의 나머지 전체는 사실상 이 문장에 대한 긴 옹호이자 단서 달기다.
이 틀이 말하지 '않는' 것에 주목하자. 이 틀은 웹3를 "블록체인"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블록체인은 더 큰 암호학 도구 상자의 한 부품이지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9장에서 살펴볼 고급 암호학 — 영지식 증명, 안전한 다자간 연산, 임계 서명 — 은 갈수록 웹3의 구성 요소가 되어 가고 있으며, 이 도구들 가운데 몇몇은 블록체인이 거의 또는 전혀 없이도 자기주권과 프라이버시를 실현한다. 또한 이 틀은 "소유"를 여러 기능 중 하나쯤으로 취급하지도 않는다. 소유는 더 깊은 곳에서 프로젝트를 움직이는 목표 — 우드가 '자기주권'이라 부르는 것 — 의 한 가지 표현이다. 웹3의 독특한 내기는, 당신의 신원과 데이터와 가치를 다스리는 규칙을 회사나 국가에 대한 믿음에 맡기는 대신 수학과 코드로 집행되는, '검증 가능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데 있다. 우드가 자신이 만든 용어를 돌아보며 웹3의 요체로 "프라이버시, 자기주권, 투명성"(privacy, self-sovereignty and transparency)을 꼽고, 웹3의 "더 적은 신뢰, 더 많은 진실"을 기술 세계의 다른 곳에서 그가 목격하는 정반대 경향과 대비시키는 것도 바로 이런 의미에서다(Wood, as reported in Wood, 2022).
웹3를 사회기술적 프로젝트(socio-technical project)라고 부르는 것은, 그것이 서로 다른 두 가지가 붙어 있는 물건이며 어느 한쪽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기술적' 절반은 실재하고 구체적이다. 암호학, 디지털 서명, 블록체인, 스마트 컨트랙트(smart contract), 토큰 등 — 제3부와 제4부에서 살펴본다. '사회적' 절반도 똑같이 실재한다. 권력, 신뢰, 프라이버시, 자기주권에 관한 믿음의 묶음 — 제5부에서 살펴본다. 이 책의 주장에 따르면, 옹호자와 비판자 모두가 저지르는 중심적인 분석적 오류는 이 두 절반을 하나로 뭉개는 것이다. 이념에 대한 비판이 기술을 반박한 것처럼 굴거나, 작동하는 기술 하나가 이념을 입증한 것처럼 구는 일 말이다. 디지털 서명은 수학의 한 조각이고, "개인은 자신의 신원과 데이터와 가치를 스스로 통제해야 한다"는 정치적 열망이다. 둘은 '웹3'라는 단어 안에 함께 포장되어 있지만 같은 종류의 주장이 아니며, 따로따로 성공하거나 실패할 수 있다. 사회적 주장의 가장 야심 찬 판본 — '조직 전체'가, 그 규칙과 금고와 거버넌스가, 믿고 받아들여야 하는 기관이 아니라 신뢰를 최소화한 프로토콜로서 온라인에 살 수 있다는 주장 — 은 21장의 주제이며, 이 책은 이 "프로토콜로서의 조직"을 웹3의 가장 파급력 큰 도약으로 다룬다.
쉽게 말해: 이 책의 답은 이렇다. 웹3는 '웹을 암호학 위에 다시 지으려는' 시도다. 플랫폼이 아니라 당신이 자신의 신원, 데이터, 돈을 통제하되, 믿어야만 하는 회사가 아니라 컴퓨터가 검사할 수 있는 규칙 아래에서 그렇게 하자는 것이다. 블록체인은 이를 위한 가장 익숙한 도구일 뿐 유일한 도구가 아니고, 이 발상의 가장 대담한 판본은 조직 전체마저 검증 가능한 코드로 굴러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기술에는 인터넷이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가에 관한 정치적 믿음이 함께 감겨 있는데, 혼란의 상당 부분은 사람들이 이 꾸러미의 절반을 전체로 착각하는 데서 온다.
이 프로젝트를 경합 중(contested)이라고 부르는 것은 1.3절의 논점을 이어받는 것이다. 이 꾸러미는 바깥에서도(전부가 과장이거나 유해하다고 보는 비판자들), 안에서도(무엇이 진짜 웹3인지를 두고 다투는 옹호자들) 다투어진다. 이를 웹의 암호학적 재설계(cryptographic re-architecture of the web)라고 부르는 것은 두 가지 작업을 겸한다. 하나는 웹3를 역사 속에 자리매김하는 일이다. 웹3는 인터넷이 어떻게 조직되어야 하는가를 둘러싼 오랜 논쟁의 최신 수(手)이며, 이 책은 그 논쟁을 정적인 초기 웹(웹 1.0)에서 플랫폼이 지배하는 현재(웹 2.0)와 그 불만을 거쳐 지금 이 순간까지 추적한다(제2부). 다른 하나는 수단을 정확히 못 박는 일이다. 기존 웹의 도배를 새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신뢰 가정을 암호학적 토대 위에서 다시 짓는 일이라는 뜻이다.
결정적으로, 이 논지를 진술하는 것과 그것을 지지하는 것은 다르다. 이 책의 주장은 '분석적'이지 '홍보성'이 아니다. 이것이 웹3가 무엇인지 '기술(記述)'하는 가장 정확한 방식이라는 주장일 뿐, 웹3가 성공하리라거나 그 약속이 참이라는 주장이 아니다. 이 책의 서술에서 웹3는 일부는 실재하고, 일부는 열망이며, 일부는 과장이고, 그 최종 성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특히 자기주권과 "프로토콜로서의 조직"은 실무에서 아직 대체로 열망에 머물러 있다. 관리자 키, 다중서명 통제, 오프체인 거버넌스, 그리고 자가수탁(self-custody)의 만만치 않은 사용성 부담 — 공인인증서 시대를 통과해 본 한국 독자라면 '키 하나를 스스로 관리하는 일'이 얼마나 성가실 수 있는지 짐작할 것이다 — 때문에 이상과 현실은 여전히 벌어져 있다(29장과 32장). 암호학이 광고대로 작동하는지, 탈중앙화가 현실과 부딪히고도 살아남는지, 자기주권이 결국 실질적인 무언가를 뜻하게 되는지 — 이것들은 열린 경험적 질문이며, 뒤의 장들이, 저자의 바람으로는 공평한 손으로, 검토한다. 우드의 비전은 여기서 완성된 사실이 아니라 이 프로젝트를 움직이는 이상으로서 제시되고, 다른 곳에서 증거에 비추어 시험된다.
1.6 왜 이것이 당신에게 중요한가
이 기술을 쓸 생각이 전혀 없는 독자라면, 왜 이 모든 것에 굳이 주의를 기울여야 하느냐고 물을 만하다. 적어도 네 가지 이유가 있으며, 어느 것도 독자가 블록체인 자체를 흥미로워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첫째, 거대한 규모의 돈과 법이 걸려 있다. 암호화폐를 어떻게 평가하든, 이 시장으로 실로 큰돈이 흘러들고 흘러나왔으며, 재산이 만들어지고 또 사라졌고, 세계 각국 정부가 지금 이를 다스릴 법을 쓰고 있다(31장의 주제다). 한국 독자에게 이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개인투자자 중심 암호화폐 시장 가운데 하나로, 국내 거래소 가격이 해외보다 높게 형성되는 현상에 '김치 프리미엄'이라는 이름이 따로 붙어 있을 정도이고, 2022년 5월 한국인 권도형이 만든 테라/루나의 붕괴는 국내외 투자자에게 막대한 손실을 남기며 세계 암호화폐 시장 전체를 뒤흔든, 이후로도 이어지는 법적 공방의 출발점이 되었다. 법도 이미 독자의 현실이다. 특정금융정보법에 따른 거래소 실명계좌 제도가 그렇고 — 한국 법률이 암호화폐를 부르는 공식 명칭은 가상자산(virtual asset)이다 — 2024년 시행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그렇다. 정책은 지금 만들어지고 있고, 그 정책을 만드는 사람을 뽑는 것은 시민이다. 실제로 무엇이 규제되고 있는지 이해하는 것은 취미가 아니라 시민적 역량이다.
둘째, 밑바닥의 불만은 거의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다. 웹3의 정서적 힘은 현재 인터넷에 대한, 널리 퍼져 있고 잘 기록된 불편함에서 나온다. 소수의 거대 기업이 이용자를 감시하고, 개인 데이터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고, 책임을 묻기 어려운 막대한 권력을 행사한다는 불편함이다. 학자 쇼샤나 주보프는 이 체제에 "감시 자본주의"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것을 "인간의 경험을 공짜 원재료로 일방적으로 수취하는" 논리라고 규정했다(Zuboff, 2019). 하루의 소통 대부분을 한 메신저로 하고, 카카오나 네이버 계정 하나로 수십 개 서비스에 로그인하며 살아가는 한국의 이용자에게 이것은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웹3는 스스로를 바로 이 불만에 대한 답으로 내세운다. 그 답이 틀렸다고 의심하는 독자라도, 자기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대해 제출된 해법을 이해하는 데는 자기 몫의 이해(利害)가 걸려 있다.
셋째, 그 수사(修辭)는 어디에나 있고, 그 상당수는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설득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다. "탈중앙화", "무신뢰"(trustless), "소유" 같은 말들이 광고에서, 뉴스에서, 정치 논쟁에서 쓰이는데, 그 의미는 종종 슬그머니 늘어나거나 뒤집힌다. 정확한 주장과 마케팅 구호를 가려낼 줄 아는 독자는 속이기 어렵다 — 토큰을 부풀려 파는 홍보자에게든, 진짜 혁신을 싸잡아 기각하는 비판자에게든.
쉽게 말해: 암호화폐를 살 생각이 없더라도 이 문제에는 당신의 몫이 걸려 있다. 진짜 돈과 새 법이 걸려 있고, 웹3를 낳은 불만 — 한 줌의 회사가 우리 온라인 생활을 너무 많이 소유하고 있다는 불만 — 은 대부분의 사람이 느끼는 것이며, 이를 둘러싼 설득의 언어는 어디에나 있다. 그 언어를 비판적으로 읽어 내는 능력은 일종의 자기방어다.
넷째, 그리고 가장 일반적으로, 웹3는 기술의 약속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팔리고, 현실의 시험대에 오르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 연구다. 여기서 보이는 패턴 — 진짜 기술 혁신 하나, 거기에 붙는 이상주의적 서사, 투자와 과열의 물결, 반발, 그리고 알맹이와 거품이 천천히 갈라지는 과정 — 은 수많은 기술에서 되풀이되며, 인공지능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웹3에 대해 명료하게 생각하는 법을 익히는 것은, 다음번 경합하는 기술에 대해, 또 그다음 기술에 대해 명료하게 생각하기 위한 연습이다.
1.7 이 책이 할 일과 하지 않을 일
지적 정직성은 기획의 경계를 처음부터 밝혀 둘 것을 요구한다.
이 책이 할 일은 웹3를 사회기술적 프로젝트로서 엄밀하게, 출처를 온전히 밝히면서, 그러나 의도적으로 접근하기 쉽게 검토하는 것이다. 모든 기술 용어를 사용하기 전에 쉬운 말로 정의하고, 진짜 공학 — 암호학, 블록체인, 합의, 스마트 컨트랙트, 토큰 — 을 비전공자가 따라올 수 있는 말로 설명한다(제3부와 제4부). 이 발상의 역사적·지적 기원을 추적하고(제2부), 경합하는 정의들을 명료하게 정리해 갈라내며(제5부), 실제 응용 사례와 그 찬반 증거를 살피고(제6부), 숙고된 종합 판단에 이른다(제7부). 그 전 과정에서 옹호자와 비판자 '양쪽' 논거의 가장 강한 판본을 제시하고, 과장은 과장으로, 진짜 혁신은 진짜 혁신으로, 열린 질문은 열린 질문으로 표시할 것이다.
이 책이 하지 않을 일은 어떤 종류의 것이든 투자 조언을 제공하는 일이다. 토큰, 암호화폐, 탈중앙화 금융은 여기서 오로지 분석 대상으로만 논의되며, 결코 투자 권유가 아니다. 이 책의 어느 문장도 무언가를 사라거나 팔라거나 보유하라는 제안으로 읽혀서는 안 된다. 이 책은 사용 설명서도 아니다. 기술이 원리상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할 뿐, 지갑을 다루거나 컨트랙트를 배포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옹호의 글도 아니다 — 웹3를 팔지도, 묻어 버리려 들지도 않는다. 그리고 미래를 예측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증거가 정말로 미확정인 곳에서는, 거짓 확신을 제조하는 대신 미확정이라고 말한다(33장은 바로 주장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가르는 데 바쳐진다).
끝으로 태도에 관한 한마디. 저자의 다짐은 공평함이며, 이는 회피로서의 중립과 같지 않다. 공평함이란 각 입장에 가장 공정한 발언 기회를 주고 나서 증거를 따라가는 것이지, 결론 내리기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증거가 비판자를 지지하는 곳에서는 그렇다고 말할 것이고, 옹호자를 입증하는 곳에서도 마찬가지다. 목표는 책의 끝에서 독자가 "웹3란 무엇인가?"에 대해 '자신의' 답을 — 더 많이 알고, 더 정확하며, 더 속이기 어려운 답을 — 내놓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1.8 로드맵: 일곱 개의 부
이 책은 일곱 개의 부로 짜여 있으며, 문제의 틀 잡기에서 토대를 거쳐 정의, 증거, 판단으로 나아간다.
제1부 — 질문과 그 틀(1–2장)은 탐구의 무대를 차린다. 이 서론이 문제와 논지를 제시하고, 2장은 기술적인 장들에 앞서 기초를 다지고 싶은 독자를 위해 컴퓨터, 네트워크, 소프트웨어 입문을 제공한다.
제2부 — 역사적·개념적 기원(3–7장)은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경위를 이야기한다. 인터넷과 웹의 기원, 정적인 "읽기"의 시대였던 웹 1.0, 플랫폼이 이끈 "읽기–쓰기"의 시대인 웹 2.0, 그 시대의 불만(감시, 중앙화, 데이터 문제), 그리고 '웹3'라는 단어 자체의 정확한 어원과 지성사가 여기에 담긴다.
제3부 — 기술적 토대, 쉽게 설명하기(8–15장)는 기계 장치를 쉬운 말로 조립한다. 암호학(해싱, 키, 디지털 서명); 웹3를 갈수록 규정하며 그것이 단순한 "블록체인" 재설계가 아니라 '암호학적' 웹 재설계임을 드러내는 고급 암호학 — 영지식 증명, 안전한 연산, 프라이버시의 최전선; 분산 시스템과 중앙 권위 없이 합의에 이르는 문제; 블록체인 그 자체; 그 최초의 작동 사례인 비트코인; 이더리움과 스마트 컨트랙트; 이 시스템들을 정직하게 유지하는 합의 메커니즘; 그리고 이들을 더 빠르게 만들고 서로 잇는 노력들.
제4부 — 웹3의 구성 요소(16–24장)는 이용자가 실제로 마주치는 부품들을 살핀다. 토큰과 스테이블코인, 대체 불가능 토큰(NFT)과 디지털 소유, 지갑과 자가수탁, 디파이(DeFi, 탈중앙화 금융), 다오(DAO, 탈중앙화 자율 조직), 이것들이 결합해 '조직 전체'가 프로토콜로서 온라인에 존재하게 되는 방식 — 이 책이 웹3의 가장 파급력 큰 도약으로 다루는 "무신뢰 기업" — 그리고 탈중앙화 신원, 저장과 연산, 블록체인을 바깥 세계와 잇는 "오라클"과 "브리지"까지.
제5부 — 웹3 정의하기(25–27장)는 이 책의 분석적 심장부다. 경합하는 정의들과 "읽고, 쓰고, 소유한다" 프레임을 펼쳐 놓고, 사이퍼펑크에 뿌리를 둔 이념으로서의 웹3를 검토하며, 웹3를 시맨틱 웹 및 메타버스와 조심스럽게 갈라낸다.
제6부 — 응용, 증거, 비판(28–32장)은 주장을 현실에 비추어 시험한다. 금융, 예술, 게임, 신원, 공공 부문에 걸친 실제 사용 사례; 과장, 사기, 재중앙화에 관한 비판; 환경적·경제적·사회적 외부효과; 법과 규제; 그리고 보안과 인간적 위험.
제7부 — 종합과 미래(33–35장)는 실들을 한데 모은다. 증거가 지지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있음직한 미래들과 열린 연구 질문들, 그리고 이 책의 심장에 놓인 질문에 대한 최종적이고 숙고된 답.
1.9 종합
이 장은 "웹3란 무엇인가?"가 간단한 답을 허락하지 않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논증했다. 이 용어는 '경합 중'이며, 엔지니어, 투자자, 이념가, 마케터, 비판자가 저마다 실재하는 이해관계와 실재하는 논거를 갖고 서로 양립 불가능한 방식으로 쓰고 있다. 그 경합은 일시적이 아니라 구조적이다. 이 단어가 특정 기술들에 대한 기술(記述)과 인터넷이 어떻게 조직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가치 실린 비전을 하나로 녹여 붙였고, 그런 단어를 정의하는 것은 이미 편을 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책 자신의 답은 이를 정직하게 다룬다. 웹3는 경합 중인 사회기술적 프로젝트, 곧 '웹의 암호학적 재설계'다 — 응용 암호학에 탈중앙화 인프라를 더한 것으로, 블록체인은 그중 통상적인 계층일 뿐 유일한 계층이 아니며 — 이를 움직이는 목표는 '자기주권', 곧 개인이, 그리고 가장 대담한 판본에서는 조직 전체가, 그저 믿어야 하는 규칙이 아니라 검증할 수 있는 규칙 아래에서 신원과 데이터와 가치를 통제해야 한다는 이상이다. 우드를 따라 그 표어는 "더 적은 신뢰, 더 많은 진실"이다. 이 답은 분석적이지 홍보성이 아니다. 웹3가 성공할지를 미리 판정하지 않으면서 웹3가 '무엇인지'를 기술한다.
이어지는 장들은 이 정의를 뒷받침하는 증거와 이 정의에 달아야 할 단서, 그리고 이 정의를 향한 비판을 쌓아 가며, 언제나 같은 지배적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우리는 2장에서, 뒤의 어느 장도 독자가 아직 배우지 않은 지식을 전제하는 일이 없도록, 컴퓨터와 네트워크와 소프트웨어에 관한 쉬운 입문에서 시작한다.
이 장에서 인용한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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