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과 웹3의 연대기
이 연대기는 최초의 컴퓨터 네트워크에서 오늘의 웹3(Web3)에 이르는 긴 궤적을 따라간다. 본문의 참고 지도로 쓰이도록 만든 것으로, 이 책에서 다룬 발상과 기술과 위기 들이 서로 어떤 시간 관계 속에서 펼쳐졌는지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각 항목은 날짜와 사건, 그리고 그 사건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짧은 풀이로 이루어진다. 날짜는 이 책의 연구 자료 또는 확립된 공적 기록에서 가져왔으며, 날짜 자체가 실제로 다투어지거나 불분명한 경우에는 그 사실을 밝혀 두었다.
연대기를 읽기 전에 한 가지 일러둘 것이 있다. 아래의 시대 구분은 서로 겹친다. 블록체인 시대는 '웹3'라는 말이 생기기 전에 시작되고, '웹3'라는 말은 오늘날 우리가 웹3라고 부르는 것 대부분이 만들어지기 전에 만들어진다. 이 어긋남 자체가 이야기의 일부다.
전사(前史): 인터넷과 웹(1969~2008)
- 1969년 10월 29일
UCLA의 레너드 클라인록 연구실에서 스탠퍼드연구소(SRI)로, ARPANET(아파넷)을 통한 첫 메시지가 전송되었다. 보내려던 단어는 'login'이었지만 두 글자를 보낸 순간 시스템이 다운되는 바람에, 인터넷의 조상 위를 최초로 건너간 것은 'lo'라는 두 글자였다. 패킷 교환 방식의 이 군사 연구망이 인터넷의 직계 기술적 조상이다.
- 1974년 5월
빈턴 서프와 로버트 칸이 "A Protocol for Packet Network Intercommunication"(패킷 네트워크 상호 통신을 위한 프로토콜)을 발표했다. 훗날 TCP/IP가 되는 이 설계는 서로 다른, 호환되지 않는 네트워크들을 하나의 '네트워크들의 네트워크'로 연결할 수 있게 한 돌파구였고, 바로 그것이 인터넷의 개념적 핵심이다.
- 1983년 1월 1일
아파넷이 TCP/IP로 공식 전환했다. 이 '플래그 데이'(flag day)가, 우리가 지금도 쓰는 프로토콜 위에 세워진 실제 작동하는 시스템으로서의 인터넷이 가동을 시작한 순간이다.
- 1989년 3월
팀 버너스리가 CERN(유럽입자물리연구소)에 "Information Management: A Proposal"(정보 관리: 하나의 제안)을 제출했다. 그가 훗날 월드와이드웹이라 이름 붙일 전 지구적 하이퍼텍스트 시스템의 밑그림이었다. 상사는 표지에 "모호하지만 흥미롭다"(Vague but exciting)라고 갈겨써 두었다. 이 제안서에 웹의 세 기둥, 곧 HTML, URL, HTTP가 담겨 있다.
- 1991년 8월 6일
월드와이드웹이 인터넷 위의 공개 서비스가 되고 첫 웹사이트가 문을 열었다. 대체로 정적인 페이지들로 이루어진 '읽기 전용' 웹 1.0 시대 — 대다수 사람이 처음 만난 웹 — 의 출발점이다.
- 1991년
암호학자 스튜어트 하버와 W. 스콧 스토네타가 디지털 문서에 암호학적으로 안전한 타임스탬프를 찍는 연구를 발표했다. 해시(hash), 곧 일종의 '암호학적 지문'을 사슬처럼 이어 붙여, 기록을 사후에 고칠 수 없게 만드는 방식이다. 이 '블록의 사슬' 아이디어는 블록체인의 직계 지적 조상이며, 사토시 나카모토의 비트코인 논문도 훗날 이들의 연구를 인용한다.
- 1993년 3월 9일
에릭 휴스가 "A Cypherpunk's Manifesto"(사이퍼펑크 선언)를 발표했다. "전자 시대의 열린 사회에는 프라이버시가 필수적이다"(Privacy is necessary for an open society in the electronic age)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사이퍼펑크는 코드를 쓴다"(Cypherpunks write code)라는 표어를 남긴 이 글은 프라이버시·암호학 운동을 하나의 흐름으로 응집시켰고, 그 발상 — 익명성, 중앙 권위에 대한 불신, 자유의 도구로서의 코드 — 은 비트코인과 웹3까지 곧장 이어진다. (티머시 메이가 1988년에 쓰고 1992년에 유포한 "Crypto Anarchist Manifesto"[암호 무정부주의자 선언]가 이 운동의 또 하나의 창립 문서다.)
- 1999년 4월
디자이너 다시 디누치가 "Fragmented Future"(파편화된 미래)라는 글에서 '웹 2.0'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었다. 정적인 웹은 "앞으로 올 웹의 배아에 불과하다"는 예측과 함께였다. 이 용어는 훗날 전혀 다른 발상을 가리키는 말로 다시 쓰이며 대중화된다.
- 2000~2001년
닷컴 거품이 꺼지면서 투기적 인터넷 기업들이 무더기로 쓸려 나갔다. 이 붕괴는 살아남은 기업들이 설 터를 닦아 주었고, 그 생존자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찾으려는 노력이 '웹 2.0'에 현대적 의미를 부여하는 데 일조한다.
- 2001년 5월
버너스리가 제임스 헨들러, 오라 라실라와 함께 Scientific American에 "The Semantic Web"(시맨틱 웹)을 발표하고, 기계가 의미를 읽을 수 있는 웹의 비전을 그렸다. 이것이 '원조' 웹 3.0이다 — 훗날의 블록체인 '웹3'와는 별개의 계보이며, 둘을 혼동하게 만드는 단골 원인이다.
- 2004년
오라일리 미디어와 미디어라이브가 첫 웹 2.0 콘퍼런스를 열었다. 브레인스토밍에서 데일 도허티가 제안한 이 문구는 여기서 닷컴 붕괴 이후 세대의 기업들을 설명하는 말로 대중화되었고, 그 축에는 '플랫폼으로서의 웹'(Web as Platform)이라는 발상이 있었다.
- 2000년대 중반
플랫폼 시대가 자리 잡았다. 소셜 네트워크, 이용자 제작 콘텐츠, '플랫폼으로서의 웹'이 인터넷을 한 줌의 지배적 기업 중심으로 재편했다. 이 읽기–쓰기 웹은 참여를 가져왔지만 동시에 집중도 가져왔다. 비판자들이 — 훗날 쇼샤나 주보프가 '감시 자본주의'(surveillance capitalism)라는 이름 아래 — 웹 2.0의 근본 병폐로 지목하는 중앙화와 데이터 수탈이 그것이며, 웹3는 바로 그에 맞서는 기획으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한다.
- 2005년 9월 30일
팀 오라일리가 플랫폼 웹을 정의한 정전(正典)급 에세이 "What Is Web 2.0"(웹 2.0이란 무엇인가)을 발표했다. 쓰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좋아지는 서비스로서의 소프트웨어, 집단 지성과 네트워크 효과의 활용이 그 핵심이다. 이 글의 설계 패턴 가운데 하나인 "데이터는 차세대 인텔 인사이드"(Data is the Next Intel Inside)는 데이터가 자산이 되는 경제를 예고한다.
블록체인 시대(2008~2015)
- 2008년 10월 31일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필명으로 비트코인 백서 "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비트코인: P2P 전자 화폐 시스템)이 암호학 메일링 리스트에 배포되었다. "신뢰 대신 암호학적 증명에 기반한"(based on cryptographic proof instead of trust) 전자 결제를 제안하며, 신뢰할 제3자 없이 이중지불 문제를 푸는 방법을 담고 있다. 나카모토의 정체는 지금도 밝혀지지 않았고 다투어진다.
- 2009년 1월 3일
비트코인 제네시스 블록(0번 블록)이 채굴되었다. 그 코인베이스에는 "The Times 03/Jan/2009 Chancellor on brink of second bailout for banks"(더 타임스, 2009년 1월 3일 — 은행권 2차 구제금융 직전의 재무장관)라는 신문 헤드라인이 새겨져 있다. 타임스탬프인 동시에, 비트코인이 맞서 태어난 금융위기에 대한 뼈 있는 논평이다. 최초의 작동하는 블록체인이 실제로 태어난 순간이다.
- 2014년
비탈릭 부테린의 이더리움 백서가 튜링 완전(Turing-complete) 프로그래밍 언어를 내장한 블록체인을 제안했다. 결제만이 아니라 범용 스마트 컨트랙트(smart contract)를 돌릴 수 있게 하는 이 일반화 — 프로그래밍 가능한 '세계 컴퓨터' — 가 훗날 웹3라 불리게 되는 것 대부분, 곧 디파이(DeFi, 탈중앙화 금융), NFT(대체 불가능 토큰), 다오(DAO, 탈중앙화 자율 조직)를 기술적으로 가능하게 만든다.
- 2014년 4월 17일
이더리움 공동 창립자 개빈 우드가 "ÐApps: What Web 3.0 Looks Like"(디앱: 웹 3.0은 어떤 모습인가)를 발표하며, 오늘날의 블록체인 중심 '웹3'라는 말의 의미를 처음 만들어 냈다. 스노든 폭로 직후에 쓰인 이 글에서 그는 "우리의 정보를 조직에 맡기는 것은… 근본부터 망가진 모델"이라고 주장하고 '제로 트러스트' 웹을 요구한다. 소수점 없는 표기 '웹3(Web3)'는 훗날 이 비전을 버너스리의 시맨틱 '웹 3.0'과 구별하는 표지가 된다.
- 2015년 7월 30일
이더리움의 첫 실가동 네트워크 '프런티어'(Frontier)가 출범했다. 그 제네시스 블록에는 2014년 크라우드세일(약 1,800만 달러 모금)의 배분 내역이 실려 있었다. '세계 컴퓨터'가 가동을 시작한 것이다.
웹3 시대(2016~2020)
- 2016년 6월 17일
공격자가 '더 다오'(The DAO) — 이더리움 위에 세워진, 투자자들이 직접 운영하는 세간의 주목을 받던 벤처 펀드 — 의 자금을 재진입(reentrancy) 버그를 통해 빼내기 시작했다. 최종적으로 약 360만 ETH(당시 가치로 약 5,000만~7,000만 달러; 달러 환산액은 적용하는 ETH 가격에 따라 달라진다)가 빠져나갔다. 블록체인의 규칙이 정말로 불변인지를 시험한 첫 위기다.
- 2016년 7월 20일
블록 1,920,000에서 이더리움이 다오 도난을 되돌리는 논쟁적 하드포크를 단행했고, 채굴자의 약 85%가 이를 따랐다. 하드포크를 불변성의 훼손이라며 거부한 소수는 "코드가 곧 법이다"(code is law)를 내걸고 원래 체인을 이더리움 클래식으로 살려 두었다. 이 분열은 블록체인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둘러싼, 지금도 계속되는 근본 논쟁이다.
- 2017년
ICO(초기 코인 공개) 붐. 프로젝트들이 백서 한 장만 들고 새 토큰을 팔아 수십억 달러를 모았다. 이 광풍은 실제 개발에 돈을 대기도 했지만 사기를 만연시키기도 했고, 토큰이 증권인가를 둘러싼 여러 해의 규제 공방에 불을 붙였다. 한국도 이 과열의 한복판에 있었다. 국내 거래소 시세가 해외보다 크게 높게 형성되는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kimchi premium)이 세계 언론에 오르내린 것이 바로 이 무렵이다. (개빈 우드가 웹3 재단을 설립한 것도 이해다.)
- 2018년 6월 14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당국자 윌리엄 힌먼이, 이더가 이미 충분히 탈중앙화된 만큼 현재의 이더 판매는 증권 거래가 아니라고 발언했다. 이후 여러 해 동안 토큰 규제 논쟁의 틀을 좌우하게 되는 '충분히 탈중앙화된'(sufficiently decentralized)이라는 개념이 이 발언으로 대중화되었다.
- 2020년 여름
'디파이 서머'(DeFi summer). 스마트 컨트랙트만으로 굴러가는 대출·거래·일드 파밍(yield farming), 곧 탈중앙화 금융의 이용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블록체인이 중개자 없이 복잡한 금융을 해내는 것을 처음으로 대규모로 보여 준 사건이며, 뒤이은 호황의 방아쇠가 되었다.
호황, 붕괴, 그리고 성숙(2020~현재)
- 2021년 3월 11일
비플(Beeple)의 "Everydays: The First 5000 Days"가 크리스티(Christie's) 경매에서 6,930만 달러(수수료 포함)에 팔렸다. 메이저 경매사가 순수 디지털 NFT를 경매에 부친 첫 사례다. 이 판매는 NFT를 전 세계 대중의 시야에 올려놓고 2021년 NFT 붐에 불을 붙였다 — 훗날 NFT 거래량의 상당 부분이 자전거래(wash trading)였다는 증거가 나오면서 그 열기는 한풀 꺾인다.
- 2021년 11월
강세장이 정점을 찍었다. 암호화폐 전체 시가총액이 약 2조 9,000억 달러를 넘어서고, 디파이의 총예치금(TVL)은 약 1,800억 달러(일부 집계 기관은 그 이상으로 보고)에 이르렀다. 2022년 붕괴 직전의 최고 수위선이다.
- 2021년 10월 28일
페이스북이 사명을 메타(Meta)로 바꾸고 '메타버스'로 방향을 틀며, 몰입형 가상 세계에 수십억 달러를 걸었다. 이 움직임은 웹3, NFT, 메타버스의 과열을 잠시 하나로 묶어 놓았고 — 뒤이은 후퇴는 과욕에 대한 경계담이 된다.
- 2022년 5월
테라/루나 붕괴.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 UST가 달러 페그를 잃고 자매 토큰 LUNA가 '죽음의 소용돌이'(death spiral)에 빨려 들어가면서, 며칠 만에 약 400억 달러가 증발했다. 한국 독자에게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사건일 것이다. 권도형(Do Kwon)이 공동 창업한 한국발 프로젝트였고, 국내 투자자 피해가 컸으며, 이후 권도형의 신병을 둘러싼 수사와 법적 공방이 여러 해 이어졌다. 붕괴의 여파는 스리애로우즈캐피털(3AC), 셀시어스, 보이저를 연쇄적으로 무너뜨렸고, 암호화폐 전체 시가총액을 약 2조 9,000억 달러에서 약 1조 달러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데 일조했다.
- 2022년 3월
로닌(Ronin) 브리지 해킹으로 약 6억 2,500만 달러가 도난당했다(훗날 북한 라자루스 그룹의 소행으로 지목되었다). 역대 최대급 암호화폐 절도 가운데 하나다. 몇 주 앞선 2월에는 웜홀(Wormhole) 브리지가 약 3억 2,500만 달러 규모로 털린 터였다. 크로스체인 브리지는 웹3의 가장 위험한 약한 고리 중 하나로 판명된다.
- 2022년 9월 15일
'머지'(The Merge). 이더리움이 에너지를 잡아먹는 작업증명(PoW)에서 지분증명(PoS)으로 전환하며, 에너지 사용량을 약 99.95% 줄인 것으로 추정된다. 기술 분야 역사상 최대급의 단일 탈탄소 사건 가운데 하나이며, 블록체인의 에너지 비용이 자연법칙이 아니라 설계상의 선택임을 보여 주었다.
- 2022년 11월 11일
한때 최상위 암호화폐 거래소였던 FTX가 100개가 넘는 계열사와 함께 파산했고, 고객 자금에 약 80억 달러의 구멍이 드러났다. 새로 부임한 CEO는 이를 "기업 통제의 총체적 실패"(complete failure of corporate controls)라 불렀고,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는 훗날 사기죄로 유죄 판결을 받는다. FTX는 암호화폐 붕괴기를 상징하는 스캔들이자 규제 강화의 촉매가 된다.
- 2023년 5월 31일
EU가 세계 최초의 포괄적 초국경 암호자산 규제 체계인 미카(MiCA, 암호자산시장법)를 채택했다. 2023년에 발효되어 2024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시행되며, 암호화폐 규제의 세계적 기준점이 된다. (같은 해 미국 법원은 SEC v. Ripple에서 엇갈린 판단을 내리고 SEC는 코인베이스를 제소하면서 "토큰은 증권인가" 공방을 한층 벼렸다. 한국 역시 같은 해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을 제정해 2024년부터 시행하며 같은 흐름에 합류했다.)
- 2024년 1월
SEC가 미국 최초의 현물 비트코인 ETF들을 승인했다. 블랙록의 IBIT는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한 ETF 가운데 하나가 되어 수백억 달러의 기관 자금을 암호화폐로 실어 날랐고, 암호화폐의 주류 금융 진입을 알렸다. (현물 이더 ETF는 2024년 7월에 뒤따른다.)
- 2024년 3월
블랙록이 토큰화된 미국 국채 펀드 BUIDL을 이더리움 위에 출시했다. 1년 안에 자산 10억 달러를 넘어서며 퍼블릭 블록체인 위 최대의 토큰화 머니마켓 펀드가 되었다. '실물자산'(real-world asset, RWA) 토큰화가 이론에서 실무로 옮겨 간 대표 사례다.
- 2025년 2월 21일
바이비트(Bybit) 해킹으로 약 15억 달러 상당의 ETH가 도난당했다. 현재까지 최대의 암호화폐 절도이며, 이번에도 북한 라자루스 그룹의 소행으로 지목되었다. 기관 자금이 밀려드는 와중에도 보안과 '인간 요인'이 웹3의 풀리지 않은 고질적 문제로 남아 있음을 새삼 보여 준다.
- 2025년 7월 18일
미국이 첫 주요 연방 암호화폐 법률인 지니어스법(GENIUS Act)을 제정해, 결제용 스테이블코인의 제도적 틀(1:1 준비금 보유와 자금세탁방지 의무)을 만들었다. 하원을 통과한 시장구조 법안인 클래리티법(CLARITY Act)과 함께, 2025~2026년에 암호화폐를 주류 금융 제도 안으로 공식 편입해 가는 궤도를 예고한다.
- 2025~2026년
성숙, 그리고 열린 질문들.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이 3,000억 달러를 돌파하고, 토큰화된 실물자산이 온체인 250억
31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하며, AI 에이전트 결제 레일(코인베이스의 x402 등)이 등장한다. 그러나 핵심 긴장은 풀리지 않은 채다. 실제 운영에서의 재중앙화, 약 2억 2,000만 개의 활성 주소와 어쩌면 3,000만6,000만 명에 불과할 실제 이용자 수 사이의 간극, 그리고 금융 바깥의 뚜렷한 '킬러 앱'의 부재가 그것이다. 정직하게 평가하면, 실재하지만 좁은 — 주로 금융적인 — 채택을 이룬 기술이며, 그 가장 원대한 약속들은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 경합하거나 부정확할 수 있는 날짜에 관한 노트
- 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는 알려져 있지 않고 다투어진다. 확실한 것은 문서의 날짜뿐이다(백서 2008년 10월 31일, 제네시스 블록 2009년 1월 3일).
- 이더리움 백서는 2013년 말에서 2014년 초 사이에 유포되었다. '2014년'은 관례적으로 쓰이는 인용 연도다.
- 더 다오 피해 규모(약 360만 ETH)의 달러 환산액(약 5,000만~7,000만 달러)은 기준으로 삼는 ETH 가격에 따라 달라진다.
- 머지의 에너지 절감률(약 99.95%)은 추정치다. 머지 이후의 독립 측정치 가운데는 약 99.99%에 이르는 수치도 보고되어 있다.
- 이 책에 나오는 비트코인 에너지 수치는 모두 넓은 범위 안의, 특정 시점에 묶인 점추정치이지 고정된 상수가 아니다.
- 디파이 총예치금(TVL)의 정점은 집계 기관마다 다르다(2021년 11월 기준 대략 1,800억~2,550억 달러). 기관마다 포함 규칙이 다르기 때문이다.
- 다오 하드포크의 정당성은 다투어지는 '날짜'가 아니라 다투어지는 '의미'다 — 이더리움과 이더리움 클래식을 갈라놓은 근본 논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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